토요일 홍성을 방문한 친구 중 일부가 홍성 속동에 있는 팬션에서 1박했다. 늦은 밤까지 못다한 이야기 꽃을 피우고도, 아침 일찍 일어나 갯벌에 내려가 바다 내음을 즐겼다. 아점을 위해 서산방조제를 지나 태안으로 갔다. 서산방조제는 돌아가신 현대 정주영 회장님이 유조선공법을 이용하여 건설한 방조제다. 서산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쌀이 국내 생산량의 1%에 달한다고 한다. 대단하다 !!! 세상에는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나도 할 수 있는데" 라고 생각되는 일이 무수히 많다. 중요한 것은 "나도 할 수 있는데"가 아니고, 남보다 먼저 성공적으로 하는 것이다. "흑초" 초치는 것은 남보다 늦게 시작하였지만, 계획대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보에 의하면, 국내에서 "흑초' 초치는 사람 중, 초 항아리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약 700여개라고 한다. 내년이면, 인양양초장의 항아리 수가 800여개가 된다. 국내 최대가 되는 것이다. 2년 후, 1,000개 이상의 항아리를 가지게 되고, 장기 목표인 2만개의 항아리를 가지게 되면 홍성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이다. 알려지면 판매된다. 길게 가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태안에서 간장게장과 꽃게탕으로 점심식사 후 조선시대 "무학대사"와 연관된 간월암에 들렸다. 절을 방문하면 절을 하여야 하는데,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다. 죄지은 기분이다. 나는 교회는 기도하러 가고, 절은 절하러 간다고 믿고있다.
간월암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 아주머니가 뒤로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친구분에게 포즈를 요청했다. 포즈를 취하는 아주머니가 "그러다 떨어지면 어떻해" 라고 말하셨다. 우연히 그 광경을 보고 듣게된 나는 "떨어지면 경사나지 ! '하고 속으로 웃었다. 놀부심보인가 보다 !!
친구들이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김좌진 장군 생가에 들렸다. 역사적인 사실도 사실이거니와 무엇보다도 잘 정리된 환경과 가을비와 낙엽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다. 김좌진 장군생가 기념관앞에는 국/한문 혼용의 설명표식이 있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아저씨, 아니 형님이나 또래되는 분 ( 농촌에 사시는 분은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인다 ! ) 이 읽어보더니, 못 읽겠다고 하신다. 한문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같이 온 일행 중 아주머니 한분이 소리내어 읽기 시작하였다. 눈으로 따라 읽는 나도 2개의 모르는 한자가 있었다. 아주머니 왈, 김좌진 장군은 안동 김씨이고, 자기 시댁도 안동 김씨라고 하시며, 이정도는 읽어야지 하신다. 차림새는 추수하고 관광오신 농촌의 50대 중반 아줌마이신데 놀랍다 !! 멋지게 차려입고, 얼굴에 분바르고 승용차 주차하는 김여사보다 우아하게 보였다.
휴대폰의 밧데리 사정으로 인해, 김좌진 생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몹시 아쉬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홍성에 거주하는 나는 20분 정도면 다시 올 수 있고, 입장료가 없다는 것이다. 공짜는 항상 좋다 !! 대한민국 지방정부 홍성군 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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