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은 많은 친구들이 축하 하여준 생일이었다. 다시 한번 친구들의 우정과 후의에 감사 드린다. 오늘은 음력으로 9월 14일, 또 생일이다 !!! 미역국은 10월 23일 먹었고, 오늘은 어머님께서 미역국 드셨다.
생일날은 배 아파하며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여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양력 10월 23일은 지난 주 금요일이고, 음력 9월 14일은 오늘 이기에, 어제 일요일 저녁에 어머니 슬하의 형제들이 홍성에 모였다.
울 엄니는 연안 이씨 집안에서 1935년에 출생하셨다. 엄니가 태어나셨을 때, 엄니의 할아버지는 변호사였고, 나의 외할아버지의 연세는 19세 였다고 한다. 광복전까지는 유복한 집에서, 아가씨 소리 들으며, 가마도 타고 성장하셨다고 한다. ( 친일파 집안은 아님 !! ) 그러나 광복 후 토지개혁과 6.25 이후 외할아버지의 정치활동 등으로 인해 외가집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고 한다.
울 엄니는 초등학교 선생님 재직시 6.25 참전용사 이자 직업군인이셨던 선친과 1960년 9월 14일(음) 결혼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결혼 1주년 기념일인 1961년 9월 14일 (음력)에 태어난 것이다. 어머니가 선친께 결혼기념 선물을 드린 것인지, 선친이 어머님께 결혼기념 선물을 드린 것인지 지금도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
대부분의 직업군인 출신이 그러하셨듯이, 선친은 전역 후, 여러 가지 일을 하셨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1989년 백중날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하기 휴가 중으로, 외출하시는 아버님께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세요" 라고 인사를 하였는데, 아버님은 돌아오시지 않았다. 부처님이 아버님을 데려가신 것이다. 외출시 뇌출혈로 당일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선친 살아생전,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행복했었다. 선친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우리 가족은 행복하고자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선친이 돌아가신 후, 울 엄니는 마음의 아픔을 글로 달래곤 하셨다. 2004년 선친을 그리워 하시는 울 엄니의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하셨고 지금도 시를 쓰신다.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온 가족이 모여 앉았다. 이때다 하고, 아~이고, 엄니 하면서, 엄니 젓 가슴을 만졌다. 모든 사람의 첫 사랑은 어머니이기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모든 가족이 나의 행동에 웃었다. 그런데 근육이 빠져, 있어야 할 울 엄니의 가슴이 없다. 마음이 아프고 아프다 ! 엄니 인생에 황혼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
어머니 ! 어머니 ! 우리 엄니 ! 어찌 그리도 많이 쇠약해 지셨나요 ? 불쌍하신 우리 엄니 ! 좋은 세상 이제 오고 있는데 건강하시어 오래 오래 살으셔야 합니다 ! 어려웠던 그 세월에 눈물로 힘든 고초 다 견디시고, 오로지 자식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부처님 같으신 울 엄니의 거룩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고추보다 더 맵다던 그 어려운 홀 시어머니 시집살이와 험난한 인생살이에 지친 울 엄니의 소리없는 순진한 눈물을 보았고, 지아비를 잃고 가슴이 찢어지는 울 엄니의 아픈 상처를 보았기에, 하늘이 갈라지고 지구가 두 동강 난다 한들 울 엄니의 아픔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제는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울 엄니와 정겹게 마음을 나눈 하루였다. 가을 향기와 사랑과 존경이 깊어가는 밤 이었다. 못난 아들 ( 단, 어머니에게는 잘난 아들 !! ) 이 하늘 같은 울 엄니의 은헤와 사랑에 가슴 깊이 깊이 감사를 드린다 !
엄니 사랑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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