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초

1. 식초의 역사

정재황 2017. 1. 4. 21:05

식초는 알코올을 먹고 사는 초산균에 의해 생성되기 때문에 술과 식초의 역사는 비슷한 시기로 추정됩니다.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된 식초에 대한 기록은 BC1450년경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가 아라비아어로 부른 ‘시에히게누스(Essiggenus, 식초)’ 입니다. 구약성서의 '출애급기' 및 '롯기'에도 '식초'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4),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도 식초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의사 히포크라테스(기원전 약 450~375)는 흡혈요법 후 상처를 식초로 소독하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하여 귀족이 건강과 미용에 식초를 사용하였습니다. 중국에는 공자 시대에 ‘염매’라는 살구식초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식초를 만든 것으로 짐작됩니다. 조선후기 실학자 한치윤이 저술한 '해동역사'에는 고려시대에 식초가 음식조리와 약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식초의 제조법이 민간에 널리 퍼져 민간약으로 쓰인 것은 아마도 조선시대 세종대왕 때인 것으로 보입니다. '동의보감'에는 ''식초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시며, 독이 없고 옹종을 제거하고 어지러움을 치료하며 징괴와 적을 풀어준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907년 9월 조선총독부의 '주세령'의 강제집행에도 불구하고 밀주가 성행했지만, 1916년에 들어서 총독부는 주류단속을 강화하고, 전통주를 약주, 탁주, 소주로 획일화 시킵니다. 1917년 총독부가 자가양조를 전면 금지 하면서 각 지방과 각 가정에서 담그던 양조법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1930년대 이르러 전통주가 자취를 감추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바탕으로 만드는 식초가 한국에서 사라지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1945년 광복이 되었지만, 1950년 전쟁이 일어 났고, 전쟁 이후 식량 부족을 이유로 '양곡관리법'이 제정됨으로써 '가양주'의 재료인 '누룩'을 디딜 수가 없어 전통주 문화가 더욱 쇠퇴하게 되고 더불어 가정의 '전통식초' 명맥 또한 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석유에서 뽑아낸 빙초산으로 만든 합성 식초가 점령하게 됩니다. 1969년 한0농산이란 회사에서 사과식초를 출시하였고, 1975년 현 ㈜대0의 전신인 화영식초, 00삼0과 새0식품이 양조식초 시장에 뛰어들고, 1977년 오뚜기식품이 식초 시장에 뛰어 들면서 한국의 식초는 대기업 공장에서 만드는 식초가 점령하게 됩니다. 이러한 공장식 대량생산 방식은 발효시간을 단축하고 발효 효율을 높이기 위해 농산물을 술로 담는 것이 아니라, 주정(酒精)을 원료 주입해서, 알코올발효를 생략하고 바로 초산발효만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다행스럽게도 2003년경부터 다양한 가양주들이 만들어짐으로써 ‘전통식초’의 부활을 위한 움직임 또한 활발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