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사과(謝過)하는 것 보다 어려운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것을 당연지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 눈 앞의 한 사람' 저자인 ‘오소희’님이 2018년 10월 4일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기고한 글입니다. 눈으로 읽지 마시고, 소리내어 읽으시기를 청합니다. 읽는 도중에 목이 메면, 늘 가슴에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는 따뜻한 사람입니다. 마음대신 지금이라도 말로 표현하세요 !!
남편이 마흔아홉 번째 생일을 맞았다. 나는 모든 문장이 '고마워'로 끝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같이 걸을 때 언제나 내 손을 잡아줘서 고마워. 밥을 차려주면 "고마워. 정말 잘 먹었어"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내가 아들 때문에 힘들어하면 "이런 나쁜 자식!" 이라고 해줘서, 딱 거기까지만 해줘서 고마워. 아이를 키우며 엄마로서 느끼는 걱정과 기쁨을 밤마다 18년간 들어주어 서 고마워.
지인들에게 날 소개할 때 정말 자랑스러 운 것을 내놓듯 해줘서 고마워. 내가 "와, 내 배 좀 봐!"라고 말하면 "참 네, 뭐가 나왔다고?"라고 해줘서 고마워. 내가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전혀 구분 못해줘서 고마워. 내가 말할 때 얼른 폰에서 눈을 떼고 나를 쳐다봐줘서 고마워.
자기 일을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 내 일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아무리 바빠도 문자에 바로바로 답해줘서 고마워. 친정 부모님께 세심하게 마음 써줘서 고마워.
하나도 가진 것 없이 결혼해서 하나씩 갖춰나가는 기쁨을 알게 해주어 고마워.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많던 젊은 남자에서 여유롭게 조절할 줄 아는 중년 남자로 진화해줘서 고마워. 담배를 끊지 못하지만 언젠간 꼭 끊겠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무례하고, 무지하고, 이기적이며, 다름을 존중하려 들지 않았던 젊은 부부가 피 터지게 싸웠던 시간들 내내 내 상대편에 서 그 버거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줘 고마워.
아이가 태어난 날 서른두 살의 당신은 얼마나 벅차고 두려웠을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벅참이 일상의 자잘한 사금파리로 흩어지는 과정을 두려움이 매번 산처럼 커졌다 눈처럼 녹아 사라지는 과정을 함께해줘서 고마워.
생일 케이크를 자른 저녁 나는 편지를 남편에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목이 메어버렸다. 보다 못한 아들이 대신 낭독했다. 아들의 낭독은 명랑했으나, 남편 역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은 그냥 내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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